브런치 글쓰기 골 때리는 그녀들이다
축구
※글 쓰는 소재 잡기가 어려워 몇 달을 글쓰기와 거리두기 하고 있던 어느 날 남편에게 뜬금없이 두 글자 단어 아무거나 던져보랬더니 남편이 진짜 아무거나 던졌다.
"축구"
그 덕에 나는 퐁당퐁당 주 3회는 써보려 한다.
"퐁당퐁당 브런치에 글을 던져본다"
- 축구 -
제목부터 재밌다.
"골 때리는 그녀들" 이라니.
범상치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모습을 빚대어 "엄청 골 때리네"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
이건 뭐 진짜 골을 때려 차 넣고 있다니..
요즘 때아닌 축구에 진심인 그녀들로 나는 그때가 되면 티브이 앞에 앉는다. 분명 예능인데 솔직히 엄청난 실력을 가진 실력파도 아니라 현란한 발재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브라운을 뚫고 나올법한 그녀들의 진심 어린 투혼에 나도 덩달아 투지가 불타오른다. 그러나 운동경기라는 판이야 말로 정말 냉혹한 승부의 세계이며 승 패의 쓴맛이 확실한 특히 축구야 말로 한국 남자 운동을 대표하는 경기중에 하나이다 보니 여자가 축구를 한다는 것 만으로는 거 잘 되겠나 싶은 우려의 목소리가 컸을 것이고 나 또한 프로그램 설명을 보며 제대로 할 수나 있나 싶은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여자 축구 선수들이 있다 해도 그만큼의 스포트 라이트는 못 받는 실정이기에 골 때리는 그녀들 이라는 프로가 파일럿으로 나왔을 때도 나는 그냥 재미 삼아하다가 끝나겠지 싶었다. 예능이라는 것이 어차피 흥미 끌고 관심받으면 되는 것이니 모자란 실력을 가진 여자 연예인들 모아놓고 우당탕탕 하면서 어머나 어머나 하다가 허허실실 우왕좌왕 공 때리다 자기들 만의 재미있는 도전으로 끝날 거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프로그램 설명만 보고 뻔하겠지 하면서 챙겨볼 생각은 애초에 안 했었다.
그런데 뻔하겠지 하며 홀대한 그 프로를 나는 지금 두 손을 모으고 개밴져스가 뭔가 이겨 줬으면 하면서 '어떻게 어떻게 넣어라 넣어라' 하면서 국대 축구라도 보듯 '슈~~ 웃'을 외치며 티브이에서 눈을 못때고 있다. 덕분에 남편은 요즘에 나에게 티브이 쟁이라 부르곤 한다. 나는 그녀들 덕분에 요즘 티브이에는 꽤나 진심이다. 예전엔 티브이 보는 건 할 일없는 시간 때우기라고만 생각해서 시간이 생기면 뭐든 새로운 걸 찾아 배우고 내업무에 도움이 되는 것만 하려고 했다. 최선을 다하는 건 좋지만 그땐 성공을 위한 최선이 전부였던것 같다.
뭐든지 최선을 다해서 진심으로 해낼 때 최고의 빛이 난다는 것을 책에서든 어디서든 인이 박히게 들어서 알고 있고 그땐 나도 그래 본적이 있으면서 마흔이 넘은 나는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을 잊어버렸었다. 굳이 그렇게 격하게 열심히 살지 않아도 인생이 굴러가더라 라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미래에 대한 최선보단 오늘 먹을 점심메뉴에 대해 적잖이 진심을 다하게 되고 목요일과 금요일 저녁에 만나게 되는 슬의와 펜하를 보기 위해 앞선 일들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과한 능력치를 끌어올릴 줄도 알게 된다. 그에 반에 내 삶과 내 업무 내 인생에 대해서는 어째 최선보다는 최대한 적정선을 넘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경계를 왔다 갔다 하며 살아 가고 있는 중이다.
일에 꽤나 진심으로 열정이 넘쳤던 이십 대의 나에게 무한도전쯤이야 재방송으로 본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나의 업무를 위해 시간을 할애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지만 마흔을 지난 나의 일상은 티브이는 본방사수가 제 맛이며 내 삶의 잔잔한 행복은 소확행임을 확신하는 지극히 적당하며 절대 과하지 않은 에너지를 적당히 써내는 합리적 워라벨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물론 이런 내가 절대 잘못 됐다거나 별로인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십 대의 나와 현저하게 다른 온도차로 인해 가끔은 이런 모습이 내가 맞나 싶을 때가 있어 지금에 내가 쏟고 있는 '열정'이라는 단어가 혹여 잘못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티브이라는 어마 무시한 시대적 재미 안에 탈탈탈 탕진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잠시 숨을 고르는 정도의 고민이다.
지금의 나는 가열찬 인생이라는 말보다는 가지런한 인생이 더 좋고 성공한 인생보다는 성투(성공투자)한 인생을 살고 싶다. 어느덧 적당히라는 말이 좋아져 가늘고 길게 행복하게 라는 말을 고민 없이 뱉어내는 나를 만나곤 한다. 분명 내 업무와 내 인생에 진심이었는데 추적추적 담겨온 시간들이 어느덧 소리 없는 공허함을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가볍디 가벼운 공허함이 왔을 때마다 훌훌 털어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소리 소문 없이 내 마음의 빈자리를 비집고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 채 나는 그렇게 곁을 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첨엔 엄청 열정적이지 않는 삶이 어색하고 노력하지 않고 덤비는 삶이 이상했는데 매일 다가오는 뻔한 날들의 변함없는 일상들이 어느덧 반복되다 보니 그 시간들이 적당해져 버렸고 그리 맵지도 격하지 않아도 인생이 그러라는 듯 잘 굴러갔다. 내 자아는 그렇게 나도 모르게 편한 쪽으로 적당한 평행선을 그리며 나도 모르게 지나가고 있었던 거다. 가늘고 조용하게 느슨해진 일상 속엔 드물게 찾아오는 열정이라는 불꽃도 결국 스파크를 내는 일이 현격히 줄어들어 어쩌면 나는 그런 듯 삶의 진심에 조금은 무뎌져 가는 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오랜만에 말도 안 되는 티브이 프로 하나에서 진심으로 마음에 잔잔한 스파크가 났던 것이다. 운동을 잘할 것 같지도 않은 여러 무리들이 조를 이뤄 리그를 만들어 승부를 내고 있었다. 예능이 아닌 진심 어린 도전을 하고 있다는 게 브라운관 밖으로 묻어나고 있었다. 느슨해진 나의 삶에게 "봤냐? 이게 도전이고 이게 찐이야 "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진심 어린 도전에 뭔가 말은 안 하는데 " 진짜 이기고 싶다" "잘 해내고 싶다"라는 게 느껴져서 보는 내내 그녀들이 잘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내 마음이 그녀 마음인 양 응원을 하고 있었다.
축구가 뭐라고 예능이 뭐라고 그녀들은 저렇게 진심일까 싶어 툭하고 내려놨던 내 삶을 오랜만에 툭툭 건드려보았다. 다음엔 나도 내 인생의 공 하나를 시원하게 드리블해 나가 볼수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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