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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대로 결혼하길 잘했다

옆집언니 2021. 11. 20.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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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결혼해도 괜찮아요
맘대로 결혼하길 잘했다  봄이오기전 

 

남편이 처음으로 결혼하고 싶다고 했던 날.. 나는 아주 쿨하게 거절했었다. 아직은 아닌 것 같다고.. 그러나 나의 남편은 전혀 굴하지 않고 계속 이야기해왔었다. 결혼을 하는 게 맞는 거 같다고 하루라도 빨리 같이 사는 게 좋은 것 같다고...

세뇌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니.. 반복적인 그의 말은 결국 나에게서 '그래 결혼하자'라는 대답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그러나 달콤하고 로맨틱한 고백 뒤엔 당연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말은 쿨하게 했지만 사실 나는 결혼을 위한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지 못했다. 나이로 보나 회사 업무 경력으로 보나 내가 남편보다 돈은 몇 배로 더 모아 놨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질 못했었다. 그동안 집안에 보탬을 주어야 했었기에 다시 안정을 찾고 돈을 다시 모으기까지 불과 몇 년이 채 되지 않았었다. 이제 돈을 다시 모으고 있는 중이었기에 그동안 어쩌면 나는 결혼할 맘이 더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남편은 달랐다. 중소기업을 다니면서 차곡차곡 모아논 돈이 딱 내 돈의 두배였다. 9년 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 꼬박 모은 돈은 소중했으며 결혼하자고 말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나는 남편과 양쪽 부모님께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가장 먼저 둘이서 이야기할 충분한 시간을 갖기로 했다. 분명 둘이 모은 돈이 절대적으로 많지 않지만 나는 최대한 우리의 계획을 가지고 양쪽 집에는 그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우리 스스로 우리가 알아서 결혼 준비를 하고 싶었다. 우리 둘이 살아나가야 할 인생이므로 우리가 계획하고 우리가 만들어 보고 싶었다. 집은 은행 대출로 가지고 있는 돈에서 추가로 받을 수 있는 돈을 생각하고 그 나머지 돈으로 신혼여행과 그 밖의 가전 가구들을 사보는 것으로 대략적인 계획을 잡고 양쪽 부모님께 결혼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결혼은 저희 맘대로 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진짜 저렇게 말씀드린 것은 아니다. 우리 맘대로 하고 싶은 마음은 가슴 깊이 담아둔 채 부모님께는 정중하게 '이번 결혼식은 저희 스스로 알아서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 보겠다 그리고 예단 예물, 폐백 같은 부가적인 것들은 모두 생략하겠다' 고 말씀드렸다. 다행히 양가 부모님께서도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우리 맘대로 결혼 준비를 할 수 있다니 그땐 마냥 신나고 행복했었다. 소꿉놀이하듯 이것저것 알아보는 재미가 처음엔 좋았었다.

 

"우리 결혼 날짜는 언제로 할까?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지? 결혼식장은 어디로 갈까?"

 

알아봐야 할 것도 많았지만 그만큼 결정을 내려야 할 것도 많았고 우리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양가 부모님께 공유를 해 드려야 할 것들이 많았다. 오직 우리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적다는 것을 결혼 준비를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우리 맘대로 한들 이미 결정한 것들이었더라도 아직 결정하지 않은 듯 부모님의 의견을 들어 보겠다는 의사 표현 정도는 해줘야 함을 조율의 미덕 정도는 품고 있어야 함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우리는 부모님이 알아서 하라고 했는데도 자질구레한 간섭과 압박이 있는데 도대체 집해 주고 뭐해주고 다 부모님이 해주면 결혼 사령관 되시는 거 아닌가? "

"그러게 말이야 아까 봤지? 부동산에서 딱 시어머니 같았는데 방이 2개면 되는 거 아니냐 가구 들어오려면 수리를 해야 하냐 말아야 하냐 언제 입주냐 와 무슨 하나부터 열 가지 다 체크하시던데? 옆에 있던 여자분 표정 봤어? 정말 썩었던데.."

 

집을 알아보러 들린 부동산에서 커플로 보이는 분들과 함께 온 몇 명의 부모님들을 보았었다. 그런데 다 하나같이 같이 온 커플의 표정들이 좋아 보이지가 않아 무척이나 씁쓸했다. 남편과 내가 씁쓸했던 건 무섭게 올라가는 대출금액 때문이었는데 그들의 씁쓸함은 무섭게 참견해 오는 부모님의 간섭이었겠지.. 그러나 대신 그들은 대출의 굴레는 없으므로 그 간섭을 받아 들어야 한다는 논리가 적용되었겠지 싶어 왠지 모를 짠함이 밀려왔다.

 

그들은 씁쓸함이 있었겠지만 우리의 현실은 역시 대출이었다. 우리는 결국 대출을 받는 조건으로 경기도 산본에 19평짜리 소형 아파트를 구했고 그 당시 매매와 전세가 불과 1-2천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겁 없이 우리 맘대로 9천만 원을 대출받아 그 집을 매매했다. 사실 대출받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 었던 부모님들의 적극적인 만류가 있었지만 부모님의 도움 없이 시작된 결혼 준비였으므로 우리는 우리 의견을 좀 더 강하게 내세워 우리는 매매를 고집했고 부모님을 이긴 선택으로 우리는 20년 상환으로 매달 60만 원이라는 적당한 대출 값을 지불하며 살기로 결정했다.

 

"집이 구해져서 다행이긴 한데 이제 집을 채울 가구 알아봐야겠다! 어떤 스타일을 구해 볼까? 비용이 많지 않으니 이케아같이 좀 저렴한 가구를 선택해 보는 건 어때? "

"근데 어제 부모님이 가구를 해주고 싶다고 하는데 이미 보고 오셨다는데 이번 주에 같이 가보자는데 어때?"

"어? 같이 가자고? "

 

사실 첨엔 드디어 올 것이 왔나 싶었다. 아무리 우리끼리 다 알아서 한다고 했어도 궁금하실 테고 무언가는 함께 하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인지라 드디어 참견이라는 걸 나도 받는 건가 싶어 덜컥 겁이 난 것도 사실이다. 분명 우리끼리 알아서 하라고 하셨는데 왜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사실 집구 하는데 비용을 최대한 넣었기 때문에 남편과 나는 신혼여행도 가구도 할 것은 산더미인데 쓸 수 있는 비용은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긴 했다. 하지만 남편의 맘도 부모님의 맘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뭔가 끝까지 우리끼리 해보고 싶은 욕심과 그리고 한번 예스를 하면 그다음은 다 참견을 받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노'를 외쳤던 것인데  결국 나는 한 글자 더해 '네'로 변경 노선을 탔다. 남편의 적절한 단어 선택 때문이었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으시데"

 

정말 어쩜 그렇게 단어 선택도 이쁘게 했는지..'선물'이라는 단어 하나로 참견이 아닌 결혼하려고 애쓰는 자식들에게 부모님이 선물을 주신다고 생각하니 받을만한 것들이었다. 덕분에 시댁에선 가구를 친정에서 티브이와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선물(?) 해 주셔서 우리의 결혼 준비는 극적으로 잘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양가 부모님들의 간섭은 다행히 받지 않았다.

 

내가 결혼을 해보니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 할 일은 없다는 생각이다. 돈보다는 생각이 없어서일 뿐이지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는 있다. 물론 나도 돈이 없는 관계로 결혼 생각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적당한 사람끼리 만나 평범한 삶을 꾸려 나가려고 보니 생각보다 해볼 만해졌다 결혼이..

거창할 필요 없이 딱 적당한 선에서 살아가다 보면 행복은 꽤나 우리 가까이에 있음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누군가는 여전히 모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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